(포브스 2월 3일자)그래픽=차준홍 기자 cha.
해답은 하나에 있지 않다.『월남망국사』가 베스트셀러였던 시대였다.
이렇게 구한말의 역사는 하나의 원인에만 책임을 돌리기에는 너무나 복잡했다.그렇다고 해서 다른 요인들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특히 근대화를 추진했던 지식인들은 시모노세키 조약 후 중국의 사신을 맞이했던 곳에 독립문을 세웠다.
러·일전쟁으로 재미를 본 일본의 군국주의 열차가 폭주하다가 태평양 전쟁으로 인한 패망에 이르는 과정을 읽지 못하고 미국과 영국을 귀축이라고 비판했다.그나마 근대화를 위한 갑오개혁과 광무개혁이 지식인들과 백성들의 눈에는 단지 왕실을 위한 작업으로 비추었다.
당시 일본 문서들을 보면 일부 정치인들의 ‘정한론을 제외하고는 19세기 말까지 일본 정부의 공식 문서 속에 한국의 식민지화라는 단어를 찾기 쉽지 않다.
당시 중국의 몰락과 프랑스의 베트남 식민지화를 보면서.비슷한 말을 또 들을 것 같아 걱정된다는 말도 함께요.
한편으로는 ‘이 친구는 이미 관리자 시각에서 업무를 대하고 있는데 나는 아직도 일선 실무자로만 일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서 기분이 참 그렇더라고요.행정고시 중에서도 난도가 높은 재경직에 합격해 ‘핵심 부처로 손꼽히는 기재부에 들어간 조카.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 많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매년 사무관이 수십 명씩 들어오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죠.